마음에 드는 시
엄마는 식물성일까요 / 주선화
주선화
2024. 11. 20. 08:23
엄마는 식물성일까요
- 주선화
장마철 온종일 내리는 비에
땅속으로 사라진 엄마가 계속해서 자라나요
축축한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곰팡이처럼
자책은 끈질기게 이어져 자학으로 치솟고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
변명이 최악으로 남아
계속 무한 번식 중이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망가져요
비는 그칠 줄 몰라요
계속해서 푸른 것들을 더 싱싱하게 키워요
덩달아 내 우울도 무한 성장 중이에요
너무 웃자란 것들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쓰러져요
납작 엎드린 걸 보니
나는 그만 슬픔을 끝내야 할까 봐요
너무 슬퍼하면 망자가 좋은 곳으로 못 간대
내게 남아 있는 기억들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봄에 떠난 사람
여름 장마까지
나는 이렇게나 눈물을 키우고 있었나 봐요
엄마가 자라는 속도에 맞춰
나는 슬픔을 양식하고 있었어요
우울한 정체전선이 끝나면
엄마는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거예요
그때가 되면
나는 어른이 되어 있겠지요
ㅡ 2024년 11호 형평문학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