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주선화
2025. 1. 2. 17:06
사력
- 장희수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집에선
손에서 놓친 휴지가 바닥을 돌돌 굴렀다
무언가 떨어져 가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어떤 마음은 짠맛을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같았다 그중 가장 영양가 없는 것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본 적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포기할 수 있었다면
또다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생길 리 없을 테니까
할머니도 이제야 뭔들
관두는 법을 배운 거겠지
다 풀린 휴지를 주섬주섬 되감아보면 휴지 한 칸도 아껴 쓰라던 목소리가,
귓등에서 자꾸만 쏟아지는 것 같았는데
쏟아지면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
자주 허리가 굽던 사람의 말은
더 돌아오지 않는 거지
죽을힘을 다해본다 해도
사람들은
영정 앞으로 다가와
국화꽃을 떨어트리고 멀어져 간다
정갈하고 하얗게 펼쳐지는
꽃밭처럼,
무언가 떠나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할머니 있었던
할머니의 집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