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주선화 2025. 1. 4. 09:18

가담
 
- 박 연
 
 
우, 너는 언젠가 영가들은 창문으로 다닌다는 말을 했지. 그 뒤로
밤이 되면 커튼을 쳐두었다. 낯선 영가가 갑자기 어깨를 두드릴까 봐.
 
두려운 일은 왜 매일 새롭게 생겨날까. 가자지구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소년들은 처음 보는 사람을 쏘았겠지. 총알이 통과한 어린
이마와 심장. 고구마 줄기 무침 먹으면서 봤다. 전쟁을 멈추지 않는
나이 든 얼굴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빌미로 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말을 들었어.
맨발로 거리를 걷고 싶다. 너는 내가 추워할 때 입김을 불어줄 테지.
거리에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입혀 둔 스웨터를 보자. 보라색 바탕에 웃는
얼굴이 수놓아져 있던 스웨터를 기억해?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음
흉해서, 음흉이라는 이름을 붙였잖아.
 
세상에 그런 음흉만 있다면 어떨까. 나무를 따뜻하게 해 줄 거라는
속셈이 이 세계에 숨겨진 비밀의 전부라면. 나는 여전히 좁은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본다. 그리고 그런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스스로를 오래 미워하고 있어.
 
어디로 걸어야 할까. 방향이라는 게 있을까.
 
어디든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더 많은 숨을 살릴 수 있는 쪽으로.
와중에 스스로를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너는 뭐가 아름다
운 장면이라고 생각해? 흩날리는 게 눈송이인 줄 알았는데 실은
이웃의 뼈를 태우고 남은 재였던 날?
 
갚을 것이 없는데도 자꾸만 갚으러 오는 아이들이 즐비했던 문
구점
그곳에서 우리는 소란스러운 귀를 훔치는 아이들이었지. 더 이
상 훔칠 귀가 없는데도 서성이기를 멈출 수 없는
 
어째서 세계의 비밀을 듣는 놀이를 즐겼을까
옆 나라의 수장이 계속해서 무기를 사다가 결국 소년들을 팔아
버렸다는 거
어떤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조용히 잊힌다는 거
 
말을 아끼는 동안 
나는 산뜻한 손짓으로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었다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넘어지기를 결심한 얼굴이었다
 
자꾸 밭은 숨을 쉬게 해
우리 심장은 우리의 가슴이 아니라 죽어가는 이들에게
있으니까
 
                                  *
 
우리의 얼굴을 한 영가가 창문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