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없는 존재 / 변선우
주선화
2025. 4. 21. 10:46
없는 존재
-변선우
그는 옥상에 서서
전봇대에 매달려서
내 마음에 들어앉아서 나를 본다
그래서 나는
속수무책이 된다
그는 부리가 있고
깃털과 날개가 있고
갈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은폐할 수가 없다
어느 날 새벽
그가 나를 불렀다
휘파람이었다
돌아보니
작은 불꽃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보라색
이었다 아주 선명한
불꽃은 흩어지더니
더 더 작게 흩어지더니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눈을 비벼댔다
불꽃이 사라진 자리로 가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나 내 것 아닌 것 같은 팔
공간을 싸고 도는
얼음 냄새
타고 있는 우연의 냄새
그래서 나는
웃어버렸다
여름 같은 표정으로
쪼개지듯이
손뼉도 쳤다
손이 가루가 되어
아니 소소한 깃털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흩어져 갔다
배반처럼
그의 미소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