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나 자신을 기리는 노래 / 김소연

주선화 2025. 5. 29. 07:14

나 자신을 기리는 노래

 

-김소연

 

 

입술을 조금만 쓰면서

내 이름을 부르고 나니

오른손 바닥이 심장에 얹히고

나는 조용해진다

 

좁은 목구멍을 통과하려는

물줄기의 광폭함에 가슴이 뻐근할 뿐이다

 

슬프거나 노여울 때에

눈물로 나를 세례(洗禮)하곤 했다

자동우산을 펼쳐든 의연한 사내 하나가

내 처마 밑에 서 있곤 했다

 

이제는

이유가 없을 때에야 눈물이 흐른다

 

설거지통 앞

하얀 타일 위에다

밥그릇에 고인 물을 찍어

시 한 줄을 적어본다

네모진 타일 속에는

그 어떤 암초에도 닿지 않고 먼 길을 항해 하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그의 방주가 있다

 

눈물로 바다를 이루어

누군가의 방주를 띄울 수 있도록 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니

평생토록 새겨왔던 비문(碑文)에

습한 심장을 대고 가만히 탁본을 뜨는

자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