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세상의 모든 초록 / 박현솔

주선화 2025. 6. 25. 06:49

세상의 모든 초록 (외 1편)

 

- 박현솔

 

 

제비가 떠나자마자 까치가 날아들었다

처마 밑에 지어놓은 제비집은 이제 까치집

한 계절만 살고 미련 없이 떠난 제비들

 

제비가 재재거리는 동안 난 시를 쓰고

제비 다리를 고쳐주지도 않았는데

시를 품은 박들이 연달아서 열린다

 

까치들은 날개를 접고 땅에서 놀았다

새끼 까치 옆으로 날아온 어미 까치가

함께 놀아주던 날들은 길지 않았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고

까치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찬 공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난 후

 

눈발이 땅 위로 흩날리기 시작할 때

까치들은 집을 뒤로 하고 어딘가로 날아간다

이제 다른 것들이 집을 채울 차례일까

 

흙과 먼지, 날아다니는 씨앗들,

낙하하는 가로등 불빛, 구름을 버린 빗방울

별똥별의 기억, 달빛의 적조

 

새들은 다시 그곳에 돌아와서 쉬리라

새끼들의 여린 날개를 쓰다듬어 주고

세상의 초록을 포근히 덮고 잠들리라

 

 

빛의 세계 속으로

 

 

 

새벽 먼 데서부터 빛은 스며들고 있고

일터로 나가기 위해 바삐 서두르는 사람들

몽롱한 취기와 졸음을 매달고 줄지어 서 있다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지하철, 시간에 쫓겨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문안으로 뛰어든다

지나는 역마다 뱉은 만큼 또 빨아들이고

뒤따라온 바람의 꼬리가 잘려나간다

실내의 불빛이 조금씩 흐려지고

실눈을 뜨고 하루의 운을 점치는 사람들

어둠을 건너기 위해 빛을 부르고 있다

지상으로 나올수록 삶의 풍경이 펼쳐지는

출근길은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풍선 같다

저마다의 꿈을 매달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가끔은 놓쳐버린 순간들을 아쉬워하며

한강의 중심을 빛처럼 관통하는 시간

우주의 어떤 개입도 없이 강물 위의 나뭇잎들

뒤척이며 바다로 나아가듯이 먼 데서

어둠을 휘감은 빛이 밀려오고 있는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