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젖무덤 / 권상진

주선화 2020. 7. 3. 12:42
젖무덤
ㅡ권상진


여자를 벗고, 집 앞 골목을 나오는 여자
얇고 하얀 모시런닝 속
중력 쪽으로 기운 가슴에서
탄화된 시간이 설핏 비친다

나는 남자를 버리고
한참 동안 저 밋밋한 젖을 바라본다

누가 이름 지었을까, 젖무덤이라는 말
그 속에 눈물이 한가득이다
가슴에 헛묘를 만들고
남몰래 욱여넣던 설움들이 부품하다

연고도 없는 저 무덤 앞에서 나는 경건해지고
저 여인 앞에서 숙연해진다

그런 나이가 온 것일까
등 뒤에서 팽팽하던 여자를 풀어버려도
하나 남사스러울 것 없는
그런 나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일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양을 바꾸는 가슴이
건반을 벗어난 음표들처럼 자유롭다






댓글수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