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안도현

주선화 2008. 1. 21. 11:42

무말랭이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

내 안에 넣어 씹어먹기 좋은 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

(중략)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 버리고

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

(후략)

 

공부(일부)

 

나는 낡아가는데

그는 오만한 독학생 같다

세상의 책에다 밑줄 하나 긋지 않고 있다. 밑줄 같은 건

먼 산맥의 능선과 굽이치는 강물에 다 일치감치 다 그어두었다는 듯

 

 

곡비(일부)

 

사람이 죽어도 고요한 세상을 꿰어차고 가는 물소리여

내가 밑줄 그어놓은 모든 책의 페이지를 하얗게 지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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