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77

2025년 포지션 신인 추천 / 윤다미

드라마투르기* (외 2편) -윤다미 어느 주말 너와 서울대공원을 그냥 걷기로 했다 이런 유원지에만 오면인구절벽이란 말은 거짓 같았고 오늘 우리 제일 젊은 날 조각상 팻말에 쓰인 제목을 소리내어 읽었다웃었다 우린 웃었다 뭐가 그리 웃긴지젊어, 우린 젊어. 서로 괜히 자랑도 좀 해보았다 저렇게 가까이 붙어 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안 친한 거야.진짜 부부들은, 저거 봐. 간격을 약간씩 두고 듬성듬성 다녀.저 팔자걸음을 좀 봐라, 진짜 똑같지 않냐. 저들은 분명 아빠와 딸 사이야. 하나씩 짚어가며 분석해 알려 주었다아직 내 앞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을 미리 까발리는 것처럼 내가 너무 친절해서 그랬다고 치자그러나 나에겐 궁금한 것이 전혀 없었다오늘 우리는 젊지만 나는 제법 피곤했고 약간의 졸음을 씹으며 걷다가저들..

신인상 2025.06.05

2025년 포지션 신인 추천 / 김현진

플래시백 (외 2편) -김현진 웨하스가 바삭한 건 체크무늬 때문이래 얇은 막의 크림은자기 모양을 불편해하는과자를 위로한다고 생각했지 한 조각을 떨어뜨리기 전까지 책상에 앉아서 좋아하는 웨하스를 먹는 건같은 방을 쓰는 언니가 좋아하지 않던 일러그를 깔아 둔 겨울에는 더더욱 흩어진 가루와 몇 덩이의 조각들 과자를 떨어뜨리는 것은 나의 잘못이지만쉽게 부서지는 가루는 무늬의 책임일까 떨어진 웨하스를 주우려는데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말 울지 말고 기다려 출근하는 엄마가어린 나에게 자주 했던 말 체크 남방의 그 사람이다 큰 나에게 보내던 문자 메시지 나를 오래도록 서 있게 만들던격자무늬 문장 어릴 적에는과자를 떨어뜨리면말보다 먼저 눈물이 나왔어 어른이 되었을 땐언제 오는지 모르는 사람을기다리는게 싫었지 오..

신인상 2025.06.04

2025년 문예바다 봄호 신인상

몽상 (외 2편) -김영채 당신의 편지를 받고 바다에 갔습니다태양이 하루의 반을 지나고 있었어요흔들리는 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기울어진 바딧가에 늘어진 시간만 있을 뿐 바다는 눅눅하고 썰렁해요꽃과 후회만 뒹굴고요당신은 민달팽이처럼 물컹거리고 제멋대로여서닿지 않아도 나는 움츠리게 되죠 저 바다도 한때는 깊은 숲이었을 거예요드러누운 파도를 세우는 일과달의 등에서 돋는 별을 만지는 일은 몽상입니다 흘러내린 시간은 쓸모가 없어요발을 헛디딜 수 있어 긴장해야 하죠 이럴 때는 잠이 최고죠모래사장에 침대를 들여요잠들기에는 별똥별이 적을수록 좋죠 해변의 여명은 날것입니다 발아래 양탄자를 깔아요당신은 파랗기만 할까요 그리도 편안했던 낮은 바닥은 당신에게 있고나는 당신의 원시를 향해 걸어요 한때 숲이었던 구름이 ..

신인상 2025.04.28

2025년 상반기 시와 반시 신인상 당선작

이 여름의 보색 관계 (외 2편) - 김래이 열 손가락으로는 아쉬워 열 발가락까지 찧은 봉숭아 꽃잎을 올린다 손톱보다 꽃잎을 짓이긴 엄지와 검지에 난리가 나고다시없을 불가능한 계약서 한 장이 있다면 거기 콱이 여름의 지장을 눌러 찍고 싶다 근데 아빠는 시간의 계약서를 읽기는 한 걸까 왜 손톱, 발톱은 있으면서 평평한 등에는 등톱 같은 건 없을까 배톱이 있다면 가슴만 가린 나시를 입고 거기에 갈 거야가서 빨갛게 물든 배톱을 보이며 풀을 뽑을 거야 빨간색은 벽사의 의미라는데그래서 봉숭아를 집 울타리에 심었다는데 담벼락에 모여 난 봉숭아를 피해 풀약을 쳤다는데 때가 되어 피고 때가 되어 지는 봉숭아 꽃의 때를거스르고 싶어한 웅큼 따다손톱 발톱 위에 올린다 아빠에게 갔다꽃도 없이 봉숭아 꽃을 보여주려고 잔디 ..

신인상 2025.04.17

제 1회 시인하우스 신인상

달 (외 1편) - 김미지  빈 하늘에 떠오른 풍등한 방울의 짠맛, 단맛, 쓴맛도 다 지워진골짜기가 있다깊은 골짜기 속 유년의 밧줄을 내린다 달은완전히 부수고 다시 짓는 동안성한 곳 없는 이음새로 상처의 지도를 엮는다 어둠은먼 우주의 기원 같은 침묵환하게 채색하고 싶던 날케케묵은 흙냄새가 났던 것 같다 층층으로 쌓인 먼 시간 안에 있고밑둥이 잘린 채 겹겹이 갈라졌지만속수무책의 약력으로 그려낸 나이테의 반대편 축을 중심으로 도는 것들은매번 처음인 것처럼 후속편을 찍어낸다줄과 칸 안에 있고 출구가 없는녹슨 밧줄의 굴레 나무에게도 있고너와 나 사이에도 있고새에게도 있는 어둑하고 투명한 창 건너갈 수 있지만 밖은 낭떠라지라서까마귀들은 자주 머리를 찢고까만색 가로줄 위에서 높이뛰기를 한다천장은 지면에서 꽤나 멀었..

신인상 2025.01.29

2024년 현대문학 신인상

노랑 (외 5편) -안중경  너에게 노랑을 준다.햇빛에 부서지는 생강나무 꽃그 노랑을 준다.어린 시절을 겹겹이 덮고 있는 모과의노랑을 준다.코 옆에서 입술 아래로 접혀 있던 창백한노랑을 너에게 돌려준다.매일 밤 나를 바라보던 달의 눈동자그 노랑을 준다.잠자리 꼬리에서 흘러내리던 동그란 알갱이의노랑을 준다.소나기가 그치고 난 후 하늘에 번졌던노랑을 준다.지붕의 테두리를 반듯하게 금 긋던그 노랑을 준다흰 밥알 사이로 스며들던 시금치 된장국의그 노랑을 준다.삼각형으로 조각나던 어린 새의 울음소리그 노랑을 준다.너에게 노랑을 준다.  매실  이르게 떨어진 매실들이무언가를 잃은 표정으로길 한편에 길게 흩어져 있다비슷해 보이지만뾰족하고 둥근 정도가 다르고다르게 보이지만크기와 색이 서로 비슷하다모두 어린 녀석들이다...

신인상 2024.06.05

2024년 상반기 <시와반시> 신인상 당선작 -김미라, 박지현

영락서점 1 -박지현    세 번을 보았으나 얼굴을 떠올릴 수 없다 말이 오가는 중에도 내가 한 말만 떠다닐 뿐 그이가 한 말은 없다 우는 표정을 짓는가 싶으면 금방 입꼬리가 올라갔는데 여전히 눈만은 어딜 보는지 몰랐다 말 대신 손짓이 쉬워 보였다 가리키는 손끈을 따라가면 두텁고 둥근 곳에 이르렀다 초점이 두세 군데로 나뉘어 몰렸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가며 보는 곳을 찾았다   발이 필요 없다는 듯 당기는 대로 움직였다 없어도 있는 듯했고 있어도 밀려갔다 서점으로 찾아가지 않아도 있다고 하면 있을 사람이었다 당기는 것은 도처에 있었다 한번은 남자의 얼굴로 말을 했는데 확인하려 대답을 조르니 죽은 지 이십년도 지난 K의 찡그림을 보여 주었다 눈물이 나지 않는 만남이었고 선물은 아니었다   그이가 책장을 서성..

신인상 2024.05.08

2024년 상반기 <시와 반시> 신인상 당선작- 김미라, 박지현

가정이라는 평화 (외 3편) -김미라  뼈 있는 말씀이 왔다 당신은 사소한 것은 사소해도 된다고 했다나는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할 수 없다고 했다뼈 있는 것과 뼈 없는 것은넘어서기 힘든 극명한 간극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서둘러 치킨을 먹었다먹고 남은 뼈가 이해의 테두리를 벗어나다른 해석으로 쌓였다 어디까지가 사소한 것인지닭에게 물어볼 생각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이해로 가는 길만큼배달의 경로는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았다 우리는 자꾸 접촉 사고가 났다 각자의 방식으로 치킨을 납득하는 동안오해는 한층 조밀해졌고이해로 가는 경로는 흐려졌다 닭 한 마리가 과거에서 현재로 소환되는 동안여전히 사소한 것은 사소할 뿐이고우리는 각자 배달의 지도 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치킨은 뜨거울 때 먹어야 맛..

신인상 2024.05.03

2023년 상반기 (시사사)신인상 당선작

얼룩말 -김혜정 술에 취하면 말이 되었다. 하얀 말과 검은 말이 밥상 위로 지나갔다. 밥과 나물이 말라갔다. 엄마의 무릎에 식은땀이 맺혔다. 아버지는 했던 말들을 다시 시작했다. 또다시 말이 지나갔다. 햐얀 말과 검은 말이 천장에 쌓였다. 검은 구름이 생겼다. 소나기가 내렸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이별을 반복했다. 손에 쥔 숟가락이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젓가락은 밥상 위에 질문을 만들었다. 질문은 궁금증이 되었다. 큰 말과 작은 말은 진흙탕이 되었다. 진흙 속으로 푹푹 빠졌다. 말은 빙글빙글 돌았다. 말은 말로 그물을 만들었다. 마른 말과 축축한 말이 이불 위로 지나갔다. 엄마는 솜이불을 탁탁 때리면서 말들을 잡았다. 바늘에 실을 꿰 어 한 뼘씩 쑥쑥 잡아당겼다. 입을 닫은 것처럼 단단하게 이불을 붙잡았다..

신인상 2023.04.06

2021년 하반기 문예바다 신인상 / 홍성남

메멘토모리 ㅡ홍성남 반은 열려있고 반은 닫혀 있어요 한순간에 굳은 물고기를 생각해요 물은 아직 차가워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생각은 오늘의 놀이와 같죠 창밖에는 따뜻한 물처럼 다국적인 언어들이 흘러가죠 창과 창 사이에는 무수한 창들이 생겨나서 창이 밖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되죠 저 필사의 움직임을 페트병에 담긴 물을 마셔요 물은 흐르는 중이죠 담겨 있다고 흐르는 걸 잊지는 않아요 나도 흐르는 중이죠 흐르기만 하는 중이죠 죽을 것처럼 헤엄을 쳤죠 죽을 것과 헤엄이 서로를 바라보며 멀어지도록 죽을 것은 죽을 것처럼을 밀어내고 헤엄은 헤엄을 밀어내고 언젠가 만나야 한다면 그래요 이렇게 밀어내야 하는 거죠 자숙의 시간은 너무 빠르게 다가오고 죽은 물고기에서 죽은 물고기를 꺼내보면 이해를 구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신인상 202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