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잎 / 신대철 잎, 잎 / 신대철 낮은 山도 깊어진다 비안개에 젖어 무수히 피어나는 속잎, 연하디연한 저 빛깔 사이에 섞이려면 인간의 말의 인간을 버리고 지난겨울 인간의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을까? 핏줄에 붙은 살이 더러워 보인다, 잎과 잎 사이 벌거벗고 덜렁거릴 것 덜렁거리며 서 있을수.. 사진하고 놀기 2012.05.21
봄 내린다 봄 / 주선화 봄 내린다 봄 / 주선화 봄 내린다 봄 치운 겨울 지나 뜬금없이 아지랑이 솔솔 피어나 하늘에서 시방 물 내린다 물 매화 벚꽃 송이송이 꽃눈 굴리며 시린 발가락 같은 첫사랑 그녀에게 눈꽃송이 던지며 봄 내린다 봄 사진하고 놀기 2012.04.30
물소리 2 / 문효치 물소리 2 / 문효치 베어 보면 그 속은 새벽이다 엊저녁 달빛 아직은 젖은 채 갈잎더니 밑에 있고 그 달빛에 미쳐 울던 풀벌레 소리 여운으로 날아다니는데 그래도 여명의 소근거림은 시간의 옷자락에 푸르스름 물들어 저 언덕을 넘고 있나니 사진하고 놀기 2012.03.15
와운산방 (臥雲山房) / 장석남 와운산방(臥雲山房)/장석남 그 집은 아침이 지천이요, 서산 아래 어둠이 지천 솔바람이 지천이다 먼지와 검불이, 돌멩이와 그림자가 지천이다 길이며 마당가론 이른 봄이 수레째 밀렸고 하늘론 빛나며 오가는 것들이 문패를 빛낸다 나는 큰 부자가 되길 원했으므로 그 부잣집에 홀로 산.. 사진하고 놀기 2012.03.07
아침 / 문태준 아침/ 문태준 새떼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했다 새떼가 몇발짝 떨어진 나무에게 옮겨가자 나무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의 물처럼 한번 또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출렁하는 한 .. 사진하고 놀기 2012.02.29
이유 없이 오고 이유 없이 가는 건 없다 / 박규리 아유 없이 오고 흔적 없이 가는 건 없다 / 박규리 지난 시절이 이미 다 말해주었다 가슴속 켜켜이 몸 속속들이 문신 같은 상처로 새겨주지 않았던가 나의 무지, 혹은 삶 저쪽 비애에 대하여 사진하고 놀기 2012.02.24
저녁별 / 송찬호 저녁별 / 송찬오 서쪽 하늘에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사진하고 놀기 2012.01.19
가을 들판과 놀기 / 신용목 가을 들판과 놀기 / 신용묵 어느 맥없는 손이 가까스로 널어놓고 간 아무도 걷어가지 않는 저 허공에 진 주름만큼 고개를 끄덕이는, 갈대꽃 낙엽 바람이 피 흘리고 간 자리마다 낙엽 떨어져 있다 그 살점들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처가 덧나는 곳에 노인이 앉아 있다 온몸에 흉터를 .. 사진하고 놀기 2012.01.09
늙어가는 법 / 송하선 늙어가는 법 / 송하선 머리에 흰 눈을 쓰고 서 있는 은빛 갈대들에게서 배웠네. 이 세상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며 흔들리며 소슬한 바람도 즐기며 즐기며 그저 늙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진하고 놀기 2011.11.23
木魚 / 홍사성 木魚(목어) / 홍사성 속창 다 빼고 빈 몸 허공에 내걸었다 원망 따위는 없다 지독한 목마름은 먼 나라 얘기 먼지 뒤집어써도 그만 바람에 흔들려도 알 바 아니다 바짝 마르면 마를수록 맑은 울음 울 뿐 사진하고 놀기 201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