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품 98

감포 어부 / 주선화

감포 어부 주선화 첫 새벽,초고추장에 찍어 먹던 그 맛 당신은 겨자가 들어간 간장파나는 예나 지금이나 초고추장파 간장이 아무리 맛있다 해도 나는 아니다당신과 나는 태생부터 다른 입맛 눈알이 빠질 정도로 심한 백일해 기침죽는다고 했다는데 나는 모르는 이야기 바람이 들었든가 흔들거렸든가 그냥 깃들었든가자라면서 칠판 글자가 잘 보이질 않아 눈이 나쁜 데는 가부리회*가 최고라고흔들어 깨우시던 감포 어부 아버지 회 맛은 세상에 없는 맛 초저녁에 조업 나가 새벽에 돌아와선 전속 요리사보다 빠르게갓 잡은 가부리회 한 접시 펼쳐놓고 나를 깨웠다 아버지는 그것으로 사랑을 증명했지만살림살이는 허리띠를 졸라매도 제자리걸음 동트기 전 눈 비비며 먹던 꼬들꼬들한 그 맛 바다에는 어슴푸레하다 해가 떠오르고주위가 붉게 피어나는 ..

발표작품 2025.04.11

감포 어부 / 주선화

감포 어부 - 주선화  첫 새벽,초고추장에 찍어 먹던 그 맛 당신은 겨자가 들어간 간장파나는 예나 지금이나 초고추장파 간장이 아무리 맛있다 해도 나는 아니다당신과 나는 태생부터 다른 입맛 눈알이 빠질 정도로 심한 백일해 기침죽는다고 했다는데 나는 모르는 이야기 바람이 들었든가 흔들거렸든가 그냥 깃들었든가자라면서 칠판 글자가 잘 보이질 않아 눈이 나쁜 데는 가부리회*가 최고라고,흔들어 깨우시던 감포 어부 아버지 회 맛은 세상에 없는 맛 초저녁에 조업 나가 새벽에 돌아와선 어느 조리사보다 빠르게갓 잡은 가부리회 한 접시 펼쳐놓고 나를 깨웠다 아버지는 그것으로 사랑을 증명했지만살림살이는 허리띠를 졸라매도 펴지지 않아 동트기 전 눈 비비며 먹던 꼬들꼬들한 그 맛 바다에는 어슴푸레하다 해가 떠오르고주위가 붉게 피..

발표작품 2025.01.06

팽목항 (외 1편) / 주선화

팽목항 - 주선화   그날 팽목항에 무릎꿇고 앉아 숟가락 가득 밥을 퍼 바다로 뿌리는 엄마 밥 먹고 기운 내서  어서어서 헤엄쳐 엄마 품으로 돌아오라고 비린 바람이 얼굴을 쓸고 소리 없는 주문 입술에 피고 바다에 숨어버린 얼굴 한숨이 밀어 올린 그늘 파르르 피는 파도의 파랑 햇살 한 조각 비명처럼 반짝,  고무나무  여름이다. 연일 뜨겁다 목이 탄다. 집주인은 두 달째 물을 주지 않는다 나는 열대성 식물, 웬만해선 열대우림의 습성을 가진 나의 기세를 누를 수 없다 이 베란다에서 수년의 겨울을 이겨냈다 오늘은 위험수위가 상당히 높다 폭염경보가 한 달째 내려지고 있다 고요하게  그러나 비명이 목구멍을 찌른다 억지로 잘라버리는 수족들, 기를 쓰고 모가지를 을리는 반향조차 부질없다. 태양의 각도가 아주 조금 이..

발표작품 2024.12.30

오일장에서 만나다 / 주선화

오일장에서 만나다 -주선화 바다를 호령하려 먼바다로 가신 아버지 함안 오일장에서 뵙습니다. 좌판에 앉아 싱싱한 활어가 아닌 마지막 남은 무 두 개 떨이하라 붙듭니다. 생전의 아버지 만난 듯 너무도 반가워서 두 손이라도 덥석 잡고 싶었습니다. 무가 많이 있었지만 무겁고 버거운 무 두 손 가득 웃음 머금고 모셔 왔습니다. 무 속에 담긴 물빛 들여다보면 행복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다리통만 한 무 앞에 두고 마냥, 먹먹해져 그냥, 잠잠해져 한참을 앉았다가 푸른 무청 하나씩 떼어내고 잘랐습니다. 태풍과 장마, 타들어 가는 여름 볕 가슴에 커다란 심이 박힌, 흰빛입니다. 물기 잔뜩 머금고 또르르 구르는 무 한 조각 별사탕인 양 입 안에 넣습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달콤한 맛 자신의 바다에서도 단 한 번도 활어가 되어 ..

발표작품 2023.12.13

후투티라는 새(외 1편) / 주선화

후투티라는 새 (외 1편) -주선화 비스듬히 올라선 고분군 후후훗 후후훗 우는 새, 있다 잔디 사이를 돌며 땅강아지 지렁이 콕콕 집는다 들뜬 머리, 달뜬 발목, 눈길에 잡혀 한참 서성거린다 때론 세상의 시선 한 몸에 사로잡고 싶을 때 있다 새삼 어릿어릿 황홀하다 신난 발 개발, 소발, 닭발 구함 매주 일요일은 즐겁게 공 차실 분 환영합니다 - 칠성 조기축구회 벽보는 무심코 지나가는 발들을 소집하고 있다 개발이 뛰고 소발이 뛰고 닭발이 발바닥이 땀 나도록 뛰는 일요일 아침은 야단법석 월요일 골문은 곰처럼 엉덩이 무거워도 달리고 화요일 골문은 차면 먼지버섯처럼 풀썩거려도 달리고 수요일 골문은 겅중겅중 기린처럼 이리저리 뛰는 듯 마는 듯 목요일 골문은 마른풀 씹어내는 염소 입처럼 오물오물하는 듯해도 달리고 금..

발표작품 2023.12.06

잠들기 전 무음을 한다 / 주선화

잠들기 전 무음을 한다 -주선화 새벽 세 시, 문자 알림 소리에 잠을 깬다 -ㅇㅇㅇ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온라인 부고 알림에 낯익은 이름, 순간 팔에 소름이 돋았다 며칠 전 통화할 때도 별일 없어!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장례식장 전광판에 모란꽃 같은 그녀가 함박웃음으로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꿈이겠지 울음은 슬픔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해 주는 것 같이 그 시간을 박제하는 끈 같은 것 -잘 있어 라는 말도 죄짓는 것 같아 눈물을 감추고 돌아섰다 잠들기 전, 무음으로 바꾼다 예고 없는 죽음이 들이닥쳐 슬픔이 한밤을 다 집어삼키기 전에 *2023년 경남시학 발표

발표작품 2023.12.04

내가 오래 휘파람을 불었던 이유 / 주선화

내가 오래 휘파람을 불었던 이유 -주선화 말에도 뿌리가 있어 끝없이 뻗어나가지 그 뿌리의 뿌리를 생각하다가 뿌리가 처음 발을 뻗은 그 순간을 기억해내며 일렁이는 나무의 숲을 보기도 하지 나무가 한 살씩 나이를 먹는 동안 둥글어지는 동안 뿌리만큼 키가 자라는 동안 내가 그토록 오래 휘파람을 불었던 이유에 대해 너는 이렇게 대답할 테지 말에도 귀가 있어 산등성이 메아리를 계속 들려줄게 휘파람 소리는 꼬리를 물고자라나 -시집 중에서

발표작품 2023.09.04

별 보러 갈래 / 주선화

별 보러 갈래 오빠, 오늘 밤 별 보러 갈래요? 깨를 볶는 듯 다다다 흐드러지게 쏟아지는 별빛 볼 수 있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 꼭대기에 올라서서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별 보고 싶어요 들어가지 마세요. 팻말은 어둠에 가려지고 하늘의 정녕 들이 조용히 숨죽인 채 내려오면 길한 징조 생명을 관장하는 남두육성 별자리 찾아요 살아가면서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이 아닐까요? 귀족이든 천민이든 하나의 별자리 똑같아요 어쩌면 우수수 떨어지는 별들의 우주쇼 펼쳐질지 몰라요 적당히 불어주는 따듯한 바람결 반짝이는 눈동자 새 고분군 탄생할지 몰라요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별들도 불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거야* 별자리만큼 너른 들 남강의 물줄기 은하수가 시원하게 쏟아져요 *방탄소년단 ‘소우주’ 노래 가..

발표작품 2023.08.04

아홉산 숲 / 주선화

아홉산 숲 주선화 문을 열자 대나무 숲 사이로 새 떼들 노랫소리 쨍한 날 부스스 잠 깬 민얼굴의 고요한 평화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밀려간다 노래는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들려지는 것이다 새 떼들의 노랫소리 금강송 군락까지 따라와 들려진다 맹종죽 마디마다 단단한 길이 이어진다 숲을 보호하는 신이 있는 곳이라 굿터가 자연스럽다 길이 길을 이어 모두 다 볼 수는 없다 길을 잃을 수 있으나 내가 본 것만큼 길이 있다 굽이굽이 마다 휘도는 거북이 등을 닮은 구갑죽 곧게 쭉쭉 뻗어 하늘로 오르는 편백림 등 뒤 어깨에 빛의 자리 새겨져 있다 따뜻하다가 축축하다,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2022년 경남시학 발표

발표작품 2023.07.20

섬망譫妄 / 주선화

섬망譫妄 주선화 구순 어머니 만나러 가는 길에 까마귀 한 쌍을 만났다 고속도로 중앙선에 움직임이 없는 어린 까마귀를 물고 날아가려는 큰 까마귀 움직임이 더뎌서 백미러는 그 오후를 질기게 끌고 있었다 순식간에 스치고 이내 멀어졌지만 가끔 우리를 어린 날로 데려가는 어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낯짝이 가렵다 눈도 안 보인다 아이가 되어 투정을 부리고 우리는 망연히 언니도 되었다가 남편도 되었다가 나이 들어 먹이를 구할 수 없는 부모를 위해 까마귀는 먹이를 물어다 봉양한다는데 한 달에 한 번 찾아가는 우리가 내미는 맛있는 사탕도 쓰다 하고 좋아하던 참외도 안 먹는다 하고 어머니가 제일 기다리는 건 저 따뜻한 봄날 햇살 한 줌 따라 삽짝문 열고 선바람으로 찾아가는 먼 우리 집 *2023년 영남문학 여름호 발표

발표작품 2023.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