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복사꽃 아래 천년 / 배한봉

주선화 2010. 6. 19. 15:53

복사꽃 아래 천년 / 배한봉

 

 

 

 봄날 나무 아래 벗어둔 신발 속에 꽃잎이 쌓였다.

 

  쌓인 꽃잎 속에서 꽃 먹은 어린 여자 아이가 걸어 나오고, 머리에 하얀 명주수건

두른 젊은 어머니가 걸어 나오고, 허리 꼬부장한 할머니가 지팡이도 없이 걸어 나

왔다.

 

  봄날 꽃나무에 기댄 파란 하늘이 소금쟁이 지나간 자리처럼 파문지고 있었다. 채

울수록 가득 비는 꽃 지는 나무 아래의 허공. 손가락으로 울컥거리는 목을 누르며,

나는 한 우주가 가만가만 숨 쉬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장 아름다이 자기를 버려 시간과 공간을 얻는 꽃들의 길.

 

  차마 벗어둔 신발 신을 수 없었다.

 

  천년을 걸어가는 꽃잎도 있었다. 나도 가만가만 천년을 걸어가는 사랑이 되고 싶

었다. 한 우주가 되고 싶었다.

 

 

 

 

  『시와 세계』 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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