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 여태천

주선화 2013. 5. 3. 11:45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 여태천

 

 

저녁이 왔다

그 사실을 직감하면서

저녁의 허기를 느낀다

나는 또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 위에 적어 둔다.

그사이에

저녁이 왔다.

기록의 행위가 끝나자

그때서야 저녁이 왔다.

저녁은 연필의 끝에서 온다.

공기는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다.

공기의 질량 때문에 고개를 조금 더 내리고

눈을 아주 조금만 감아 본다.

저녁이 왔다는 것을 부끄러운 얼굴은 안다.

별은 뜨지 않아도

도로 위의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누군가는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것은 바로 저녁이다.

모두가 돌아가야 할 시간

조금 더 신중하게 저녁을 확인한다.

별은 이제 뜨지 않지만

저녁은 왔다

아무도 없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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