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 연못
ㅡ손 음
어떤 죄가 절을 사라지게 하였을까
아무도 아는 이를 만나지 못하고
오후의 잔흔은 어지럽다
연못은 무성한 풀숲으로 눈을 가린 채
혼자 누워 연민한다
어떤 죄가 저리 많은 것을 폐기하였을까
연못에 빠져 죽은 목련나무와 동백나무
젊과 아름다운 귀신과
검은 물에 비친 이상한 그림자에 대해
어느 밤 사라진 불상에 대해
초승달 목탁 소리에 대해
이 모든 죄에 대해 말하지 말자
오래된 연못은 무엇이든
내게 고백하고 싶겠지만
어두운 낮빛으로 앓아누워 있을 뿐
어제는 고양이의 사체가 오늘은 생나무 가지가
연못의 심장을 누르고 있다
슬픔을 숨기느라 비밀을 숨기느라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시간이 따로 있다
나뭇잎 하나가 툭, 돌멩이처럼 떨어진다
집으로 돌아와 세수하고 거울을 보는데
잠잠 연못이 떠오른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살아 있다는 것의 질문처럼
나는 왜 이런 것들이 오래도록 슬픈가
헛것처럼 앉아 있다가
결국에는
다시 저 연못의 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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