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나는, 내가 아는 사람 / 이미화

주선화 2025. 7. 31. 07:30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이미화

 

 

맨 처음 나는 나를 몰랐을 거예요

 

내가 나를 처음 알게 된 때는 아마도 울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 울음이 바깥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안쪽을 흔든다는 것을 알았을 거예요

 

반대로 웃음은 타인으로부터 배웠을 것이고요

울음을 울 때는 내가 내 앞에 있는 것 같고

웃을 때는 타인이 내 옆에 있는 것 같으니까요

 

이런, 내 울음은 버릇이 없군요

웃음은 늘 가리는 방법이 있었지만

돌아서서 웃을 수 있지만

울음은 돌아서서 울어도 감춰지지가 않아요

 

나는 다른 사람보다도

나를 몰라요

계속 타인의 질문을 돌고 있으니까요

 

그네를 밀어 줘요

먼 거리만큼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갈 때도 올 때도 뒷모습이지만

그네에서 내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고요한 정점이 될 테니까요

 

나는 나에게 외면받은 적이 있어요

그럴 땐,

자두를 먹고

살구의 맛을 이야기해요

 

그날은 비행기가 나비가 물고기가

점점 작아지며

나를 모르는 척했어요

말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아닌 걸까요

아무리 말을 되삼켜도 나는 점점 뚱뚱해지지 않고

겉모습이 말라 가는 사람이 됩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여전히 믿어요

 

 

*이미화 시집 <비가 눈이 되고 눈사람이 되고 지나친 사람이 되고>

ㅡ 파란시선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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