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그 아이들을 우연히 만났다고 하자 / 구윤재

주선화 2025. 10. 16. 07:53

그 아이들을 우연히 만났다고 하자

 

- 구윤재

 

 

  너의 목덜미에 타고 흐르는 땀을 길이라고 하자

  그 땀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너의 어딘가에 고인다고 하자

  물속이라고 하자

  꿈속에서 만난 다정한 여름처럼

  너의 무의식에 숨어 자란 그것이 네가 웅덩이를 밟은 오후에 깨

어났다고 하자

  파란 우산에 달라붙은 물방울을 아이라고 하자

  데구르르 굴러 떨어지듯 태어나는게 아이의 본질이라서 네가 그

아이들을 줍느라 많은 생을 써버려야 했다고 하자

  구름에 몸을 뉘었다고 하자

  누워 있는 너의 베개 위로 아이들이 뛰어들고 발밑을 뛰어다니며

웃다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고 하자

  너는 그것이 슬프고 괴롭지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고 하자

  태어나자마자 하늘에 귀속된 아이들에게 이름을 붙어주었다고

하자

   부르자마자 놓쳐버렸다고 하자

  그 이름을 하나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하자

  시간이 흐를수록 미래의 아이들이 네게 돌아왔다고 하자

  너의 아이들이 너를 돌봐주었다고 하자

  그럴수록 네가 아이들을 한 명씩 잊어버렸다고 하자

  아이들이 그런 너를 다 알고 지켜주었다고 하자

  아이들이 너의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너의 가르마를 정갈하게 빗

어주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고 오래 자장가를 불러주었다고 하자

  네가 겁 먹지 않고 잠들 수 있도록 옛날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하자

  자기들의 슬픈 결말을 바꿔 썼다고 하자

  아이들이 동화를 쓴 이후로 늦은 새벽 머리가 젖은 채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고 하자

  네가 머리를 그러모아 손등으로 목덜미의 땀을 훔쳤다고 하자

  그 순간 모든 길이 동시에 닫히고 골목에 갇힌 아이들이 눈을

감았다고 하자

  우수수 쏟아지며 너의 선택을 감내했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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