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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주선화 2007. 12. 11. 11:12

고니의 詩作/안도현

 

 

  고니 떼가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그 꽁무니에 물결이 여럿 올올이
  고니 떼를 따라가고 있다
  가만, 물결이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니다
  강 위쪽에서 아래쪽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수면의 검은 화선지 위에
  고니 떼가 붓으로 뭔가를 쓰고 있는 것,
  붓을 들어 뭔가를 쓰고 있지만
  웬일인지 썼다가 고요히 지워버리고
  또 몇 문장 썼다가는 지우고 있는 것이다
  저 문장은 구차한 형식도 뭣도 없으니
  대저 漫筆이라 해야 할 듯,
  애써 무릎 꿇고 먹을 갈지 않고
  손가락 끝에 먹물 한 점 묻히지 않는
  평생을 쓰고 또 써도 죽을 때까지
  얇은 서책 한 권 내지 않는 저 고니 떼,
  이 먼 남쪽 만경강 하구까지 날아와서
  물 위에 뜻 모를 글자를 적는 심사를
  나는 사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쓰고 또 쓰는 힘으로
  고니 떼가 과아니, 과아니, 하며
  한꺼번에 붓대를 들고 날아오르고 있다
  허공에도 울음을 적는 저 넘치는 필력을
  나는 어찌 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 윤동주 문학상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