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자리 빈터에
임 난 미
말해 버리고 나면 마음자리 빈터에 무엇이 남아서 싹을 틔우겠는가 들어버린 뒤 가슴에 낀 살얼음엔 은빛 은어 봄물 저어 헤엄쳐 올 수도 없다. 길 떠난 철새들 되짚어 오던 길 돌아보지 않고 먼 하늘의 길가나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작은 길에도 되돌아 보지 않고 발 끌며 걷는 바람 그림자만이 있을 뿐이다. 한마디 못하고 돌아선 그 집 담장에는 숨길 수 없는 씨앗 가득차 고개 숙인 해바라기가 검은 얼굴 수그리고 능소화 떨어진 꽃잎만이 눈물 흘리며 발 밑에 있을 뿐. 가슴에 보낸 편지 끝 보고싶다 써 넣으면 차마 간직한 미련이 잎 지듯 지고, 피었다지는 꽃의 추억이나 싹 냈다 떨구어진 잎의 기억을 간직하는 나무는 침묵으로 길어지고 무성해지는 것. 생가지 부러진 자리 진 나고 옹이 박혀 수피로 작아진 흉터로 남게 되면 너의 얼굴 떨어진 자리 나이테의 물무늬를 그저 바라보며 견딜 일이다. 나이테와 나이테의 그 간격을 참혹하게 견딜 일이다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