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작품상 이달의 추천작(현대시 2008. 11월호)>
비늘/김륭
- 당신은 옷을 벗고 있는 중이고 나는 휘둥그레 뜬 눈을 당신의 배꼽에 매달고 있는 중이다 단추의 기원이다 당신과 나를 위해 세상이 잠시 눈을 감아주는 순간이 있다
물고기가 잘라버린 혀를 하늘에서 만진 적이 있다. 늙은 오리 한 마리 뒤뚱뒤뚱 엉덩이를 노란 물주전자처럼 앉힌 자리, 팬지꽃 코사지 장식이 달린 당신의 드레스가 물비늘로 촘촘해지는 동안
나는 당신의 등 뒤에서 달을 꺼낸다. 사랑에 빠졌다는 말의 아슬아슬하고 불온한 촉감, 뿌리가 썩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처럼 숨을 팔딱거리며 부패의 각을 세운 거다. 슬쩍 그림자를 벗어던진 새떼들 아니, 바람에 꿰인 생선구이 한 접시 까맣게
까맣게 떠가는 하늘 한 귀퉁이 마침내 우리는 서로의 빈곳을 떠오른 것이다.
길이 뒤엉킨 거미 뱃속에 걸린 날개를 만지작거리듯 침대 밑으로 벗어던진 당신 드레스와 내 줄무늬 양복은 애당초 단추가 달려있지 않았던 거다. 둥둥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몸을 바짝, 잡아당기고 있던 죽음의 각질
그러니까 사랑에 빠졌다는 말은 서로의 몸을 물처럼 통과하는 죽음을 여러 번 목격했다는 것이다. 희번덕거리기 시작하는 한밤의 갈증, 제 그림자를 물에 적시지 않는 물고기들에게 비늘은 옷이 아니라 단추다.
세상의 모든 눈이 반짝, 나와 당신의 급소를 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