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저수지가 보이는 날

주선화 2009. 1. 7. 11:04

<저수지가 보이는 날>




이곳에 온 지 삼개월이 흘렀다

매일 아침 한떼의 오리들이 물위를 떠도는 것

찬찬히 망원경으로 배려보다가,




차고 메마른 풍경에 스며들 때까지

나를 놓아버리곤 할 때가 있다

무심함이 이즈음의 나를 지켜주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배신당해본 자들은 그 쓸쓸함을 알 것이다

참담함이 자기를 지켜준다는 사실,그 아이러니를

조용히 들여다보곤 하는 셈이다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이곳에서도 나는 매일 두 끼의 밥을 먹고, 또

이틀에 한번씩 병원에 가야 한다




내 몸에서 빠져나온 피는 길고 긴, 하수도 같은 파이프를 거치며

그 자양분과 요독과 노폐물, 수분을 빼앗긴 다음 진종일 어딘가 헤매가다

어지럼증과 함께 마을 내 몸으로 돌아오곤 할 것이다




내일은 아우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너의 영어생활은 어떠하냐,

안부를 묻고는 할말이 없을 것이다




한번씩, 소스라치게 전화벨이 울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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