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 문태준
먼 못 수평선 푸른 마루에 눕고 싶다 했다
타관 타는 몸이 마루를 찾아, 단 하나의 이유로 속초 물치항에 갔다
그러나 달포 전 다솔사 요사채, 고요한 安心婁의 마루는 잊어버려요
대팻날을 들이지 않는, 여물고 오달진 그런 몸의 마루는 없어요
近境(근경)에서 저 푸른 마루도 많은 날 뒤척이는 流民일 뿐
당신도 나도 한 척의 격량이오니 흔들리는 마루이오니
누가 울고 간다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이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러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 낼 수 없는
극빈
열무를 심어 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3초씩 5초씩 짧게 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게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극빈 2
ㅡ 獨房(독방)
칠성여인숙에 들어섰을 때 문득, 돌아 돌아서 獨房으로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한 칸 방에 앉아 피로처럼 피로처럼 꽃잎 지는 나를 보았다 천장과 바닥만이 있는
그만한 독방에 벽처럼 앉아 무엇인가 한 뻠 한 뻠 작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흘러
나가는 것을 보았다
고창 공용터미널로 미진양복점으로 저울집으로 대농농기계수리점으로 어둑발은
내리는데 산서성의 나귀처럼 걸어온 나여,
몸이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꽃으로 척척척 밀려가다 슬로비디오처럼 뒤로 뒤로
주섬주섬 물러나고 늦추며 잎이 마르고 줄기가 마르고 뿌리가 사라지는 몸의
숙박부, 싯다르타에게 그러했듯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
나는 오늘도 아주 식물적으로 독방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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