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장전
조용미
용암 같은 침묵이 장전되어 있는
이 세계가 바로 나의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늘 나의 발아래 있었다
내 몸에 새겨진 상처의 울퉁불퉁함과
저 울울한 풍경들의 비루함과 명랑함을 다 잊고
나는 당분간
이 세계에 좀 더 집중하겠다
다만 의심 많은 철학자가 쓴 시처럼
교묘하고 화려한 수사를 구사하는
저 세계를
너무 뚫어지게 바라보지는 말자
저쪽은 나의 시선에 대해 너무 눈치가 빠르니까
항상 나 자신이 중요한 것처럼 초록 속의 연두처럼
적에게 쉬이 들키지 않는 정교함이 필요하다
얼음 같은 침묵이 장전되어 있는
이 세계가 바로 나의 것이니까
저 세계의 발아래 있는 풍경의 어긋남에 대해서는
좀 더 천천히 알아보겠다 당분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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