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침묵 장전 / 조용미

주선화 2016. 12. 20. 13:42

침묵 장전

                      조용미



용암 같은 침묵이 장전되어 있는

이 세계가 바로 나의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늘 나의 발아래 있었다


내 몸에 새겨진 상처의 울퉁불퉁함과

저 울울한 풍경들의 비루함과 명랑함을 다 잊고

나는 당분간

이 세계에 좀 더 집중하겠다


다만 의심 많은 철학자가 쓴 시처럼

교묘하고 화려한 수사를 구사하는

저 세계를

너무 뚫어지게 바라보지는 말자


저쪽은 나의 시선에 대해 너무 눈치가 빠르니까

항상 나 자신이 중요한 것처럼 초록 속의 연두처럼

적에게 쉬이 들키지 않는 정교함이 필요하다


얼음 같은 침묵이 장전되어 있는

이 세계가 바로 나의 것이니까

저 세계의 발아래 있는 풍경의 어긋남에 대해서는

좀 더 천천히 알아보겠다 당분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