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슬리퍼 같은, / 정온

주선화 2018. 10. 3. 13:15

슬리퍼 같은,

                         정온



차이콥스키는 무거워 베토벤은 어둡고 그래서

모짜르트가 가벼운 일요일 비가 오네

이럴땐 삼선슬리퍼 발가락이 쑤욱 빠지는

큼지막한 슬리퍼


발가락엔 피멍이 있었어

나는 피멍을,

존경하네 사랑하네

격하게 내통한 뜨거움

고통을 끼얹어 푸른 무늬를 놓은

그 헐거운 웃음을


여보세요 오선지보다 삼선지는 어떨까요

빗방울로 악보를 찍는 것도 괜찮은 방법

아닙니까 쇼팽의 희고 가는 손가락이 희고 검은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빗방울이 튀어 올라

살짝 미끄러지는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