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생선이라는 증거 / 임지연

주선화 2018. 8. 10. 13:57

생선이라는 증거

                          임지연



욕조에 잠긴 나는 팔과 다리를 잃었습니다

멸치들의 대화가 들려왔습니다

수족관에 갈치와 고등어는 모두 죽었습니다

울음에서 어떻게 걸어나가죠?


나는 늘 진심이 모자랐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입을 가리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내게서 비린내가 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계단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앉아 있던 의자가 축축하게 젖어 있을 때마다

나는 나를 의심했습니다


입안에서 돋아나고 있는 짧은 가시와

아침이면 배갯잇에 수북이 쌓인 비늘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바짝 마르고 싶은 심정으로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한 번만이라도 불러주었더라면

생선이 되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요


기분은 왜 물 위에 뜨지 않고

멸치들은 모두 배수구로 빠져나가고

창밖으로 밤이 흘러넘쳤습니다

물에 녹은 손금이 모르는 방향으로 뻗어나갔습니다


누군가 나를 발견한다면 그는 희귀한 낚시꾼으로 불리게 될 테죠


몸은 하얗게 썩고 있지만

이제 막 생겨난 지느러미만은 빛나는

온몸을 진심으로 뒤덮은

옥상 냄새가 나는

날씨는 잊은


나는 다가오는 금요일 욕실에서 발견될 것이지만

생선에게 미래 따위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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