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엉덩이로 시쓰기 / 박남희

주선화 2019. 2. 8. 16:09

엉덩이로 시쓰기

                           박남희



어떤 소설가가

소설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사뭇 시적으로 들렸었다

손으로도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아닌

엉덩이라니?


엉덩이는 구름

엉덩이는 악기

엉덩이는 봄


한때는 다니엘 헤니처럼

늘씬한 다리와 슬림한 엉덩이가 부러웠는데

시를 쓸 때마다 내 풍성한 엉덩이에서는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오고

엉덩이 밑 딱딱한 의자에서는

다양한 새소리가 들리곤 했다


이렇듯

엉덩이의 은유가 시가 되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아

나는 오늘도 머리에 구름모자를 쓰고

엉덩이로 시를 쓴다

그럴 때마다

엉덩이 근처의 음표들은 점점 불온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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