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청춘 / 최문자

주선화 2021. 5. 8. 09:49

청춘

 

ㅡ 최문자

 

 

 

파랗게 쓰지 못해도 나는 늘 안녕하다

안녕 직전까지 달콤하게 여전히 눈과 귀가 돋아나고 누군가를 오래오래 사랑한

시인으로 안녕하다

이것 저것 다 지나간 재투성이 언어도 안녕하다

 

삼각지에서 6호선 갈아타고 고대병원 가는 길

옆자리 청년은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을 읽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청년이 파랗게 보였다

연두넝쿨처럼 훌쩍 웃자란 청춘

우린 나란히 앉았지만 피아노 하얀 건반 두 옥타브나 건너 뛴다

난삽한 청춘의 형식이 싸락눈처럼 펄럭이며 나를 지나가는 중이다

 

안녕 속은 하얗다

난 가만히 있는데

여기 저기 정신 없이 늘어가는 재의 흔적

아무도 엿보지 않는데서

설마, 하던 청춘이 일어나서 그냥 나가버렸다

청춘이 아니면 말 없는 짐승처럼 고요하다

 

고대 앞에서 내릴 때

새파란 보르헤스 청년이

하얀색으로 흔들리는 내 등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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