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
ㅡ이정임
잘방잘방
가을 강은 할 말이 참 많답니다
저렇게 눈부신 석양은 처음이라고 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도무지 닫혀 있던 입
흰 귓바퀴 꽃을 봅니다
안개 짙은 그 하얀 꽃을요
나는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한 바퀴 즐거운 나의 집, 두 바퀴 세 바퀴
현(絃)을 타 봅니다 눈감고 오물오물 따라하는 어르신 핑 돌아 떨어지
는 눈물 한낮의 요양원 창밖으로 찔금 찍어 냅니다
사람들은 먼 나무위에 앉아 졸고 가을 강은 나를 자꾸 떠밀고 갑니
다 알 없는 안경너머로 두 다리 유니폼의 건장한 날이 있습니다 서슬
퍼런 기백이 있습니다 백지로 두고 떠나자고 말한 적 있답니다 구절
초 강아지풀 억새 어우러진 둔덕 제 모습에 반해 석양을 품은
비록 비위관(脾胃管)에 연명하지만 포르르 동박새 동백나무에 오르
고 옛 기억 하나 둘 돌아옵니다 참 맑은 하늘이 도리질 치다가 풀썩
잠이 들라 합니다 퐁당 물구나무를 서거나 물비늘을 따라 멀리멀리
헤엄쳐가기도 하는
가을 강은 심하게 몸살을 앓는 중입니다
소실점 잘방잘방 아스라이 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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