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수작, 그 혀 혹은 주둥이들 / 진 란

주선화 2022. 3. 24. 13:09

수작, 그 혀 혹은 주둥이들

 

ㅡ진 란

 

 

그 봄,

꽃핀다는 소식이 남쪽으로부터 올라왔다

그 소식에 얹혀 파발마도 달려왔다

어디서부터, 누구로부터, 무슨 죄를 지었다는 구체적인

확인도 없이 파말바는 끈끈한 혀를 내두르기 시작했다

군중은 소문에 예리해졌다

"A", 저 주홍글씨를 보라, 저게 증거지,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겠어?

몸을 사리고 있던 꽃들도 그늘을 기어 나왔다

광장의 수많은 꽃 속에서 반짝이는 칼날이 쏟아졌다

때아닌 적개심이 양파향처럼 뿜어졌다

군중 속에 숨은 눈물은 소금처럼 반짝이고 말 뿐

피냄새를 맡은 뱀파이어의 유전자가 과열되었다

소문은 발가벗겨진 채로 채찍을 당하고,

소금으로 때리고, 마녀라고, 당연한 일이라고, 

파발마는 외쳤다.

그럼으로써 파발마의 체면이 강건해지고 쉼없이 풀썩이던 

꼬리는 슬그머니 그늘 속으로 스며들고

꽃으로 피고싶던, 한 순간의 이생은 광장 가운데 잊혀지고

 

세상은 또, 밥 먹고 똥 누고

변함없이 봄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홍매가 만개하던 봄의 일이다.

멀리 달려가는 파발마의 꼬리만 안개처럼 펄럭거린다.

그 봄의 모든 문서는 파쇄되었다.

 

그대여 여기 불태워진 것이 무엇이었었나

여기에 파산한 꽃의 이름은 무엇이었나

꽃들의 웃음은 진짜 웃음인가

그대, 이제 평안하신가

사랑은 칼보다 날카로웠는가

 

불온한 주둥이라고 담 밖으로 처음 내보낸 혀는 

온유하고 은밀한 밀사,

 

부활절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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