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ㅡ김종해
아침 산책길에
혼자서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걸어가는
꼬부랑 노인을 보았다
그 사람 걸어가는 뒷모습 보는 동안
어느새 그 사람은 내 안에 들어와 있다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나에게 얼마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겐 병들지 않은 몸과
지팡이 없이 걸어 갈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음을
고맙다, 고맙다고
하늘에 기도하듯 입속말 하며
나는 천천히 걷는다
어제부터 세상속의 허상(虛像)을 좇아온
나의 보법(步法)은 너무 단순하다
걷는 길 어디에서나 허방이 따라 오고
사는 곳 어디에서나 참회가 필요했다
아침 산책길 위에
감상
ㅡ김성춘(시인)
세상은 온통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같은 코로나 사태와 3월9일 운명의 대선과 북한 미사일 사건 등으로 뉴스 몸살을 앓고 있다. 시인들은 독자들에게 좋은 시를 써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도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며 고민하고 있다.
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일 때 공감이 크다. 독자들에게 삶을 깊게 생각하게 하는 시가 좋은 시가 아닐까. 시인은 남이 할 수 없는 생각을 발견해야 하고,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야 하고. 남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알고, 바람의 마음, 강물의 마음, 새의 마음까지도 읽어야 하는 것이 시인의 몫이 아닐까.
'길을 걷다', 김종해 시인의 이 시는 마치 요즘 내 아침 산책길의 풍경과 내 마음을 스케치 해놓은 것만 같다. 단순한 것 같지만 음미해볼만한 시다. 산책길의 꼬부랑 노인,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그 노인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다. 나는 아직 허리가 굽지 않았다. 다행이다, 나는 아직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다. "고맙다 고맙다"는 생각 , 생의 작은 깨달음이다. 삶을 냉엄하게 응시하는 시인의 깊은 눈이다.
시어가 평이하고 시적 소재가 평범한 것 같지만 시인의 세상에 대한 감각은 예사롭지 않다. "걷는 길 어디에서나 허방이 따라 오고 / 사는 곳 어디에서나 참회가 필요했다"
사는 곳 어디에서나 허방이 따라 오고, 사는 곳 어느 곳에나 진정한 참회!가 필요하다. 이게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삶과 죽음에 대한 개성적인 통찰이 빛을 발하고 있다. 저물고 있는 지상의 한 삶을. 그 고통과 기쁨을 따스하게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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