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말아먹었다
-이윤승
오빠는 엄청 큰 파월선을 타고 맹호부대 군가를 부르며 손을 흔들며 월남으로 갔다. 몇 달 뒤 엄마의 꿈은 풍지박산이 났다. 혼자 키운, 남편처럼 의지했던 아들이었다.
이상한 흐느낌 같은 기척에 자다가 자주 눈을 떴다. 오빠도 오빠지만 엄마의 아픔이 더 아팠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나는 열 세살이었다. 엄마는 먼 곳을 응시하다가 물에 만 밥을 꾸역꾸역 먹곤 하였다. 오빠가 밟고 지나갔을 박살난 엄마의 꿈 조각이 박혀 있을 것 같은, 그 땅에 꼭 한번 가고 싶었다.
전쟁이 치열했다던 중부지역 호이안, 엄마가 꿈에서라도 서성거렸을 거라고 생각했던 울창한 밀림은 없었다. 그때의 참상을 잊은 듯 아직 여물지 않은 벼들이 서 있는 푸른 들녁, 꽃이 되지 못한 꽃들의 비문, 아픈 이름들이 풀밭 위에 여기저기 쓸쓸하게 누워 있었다. 그때의 상처를 아프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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