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솔밭길 / 유종인

주선화 2022. 8. 9. 11:31

솔밭길

 

-유종인

 

 

찬 이별을 씹었다가도

솔밭길에 오르면

감초 달인 물에 목욕하고 온 바람이

내 귀를 적시네 잇바디가 노랗고 달구나

 

궂긴 이틀 한두 번씩은

예서 이 솔바람 속에서 뺨이 나오고 이마가 반들하니

시큰한 콧등 분주한 콧김을 공중에 내어

서러운 기쁨도 눈을 반짝여 말없이

바라다 갈 것이구나

 

굽은 소나무 거칠거칠한 소나무 잔등을 어루어

미처 못 만져 준 그대를 대역했으니

내가 이 솔밭길을 거둔 뒤에도

소나무는 그대가 떠난 쪽으로

지향을 세웠네 그윽이 굽어바라네

 

해를 감추고 구름이 흩어져도

솔바람에 물든 풍문을

서너 폭 문장의 두루마리 옷에 번져 입었으니

밤에 누우면 서늘하니 속옷이 울고

비 그친 솔수펑이가

내 가슴 늑골에 번져 와 추억의 피륙을 다시 짜듯

눈보라 속에 웃음이 태연한 내가

소나무와 짐짓 등을 맞대고 맑게 미쳐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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