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여름 옷장 / 이소연

주선화 2022. 8. 15. 12:50

여름 옷장

 

-이소연

 

 

나의 여름은 부족하지 않다

그래서 여름이 아닌 것을 생각한다

여름 아닌 것은 녹지 않고

나는 여름 아닌 것을 듣는다

비는 계속되고 비보다 많은 내가 된다

여름 아닌 것을 만져본다

털로 남은 여우와 토끼와 라쿤과 양

옷장이 부족해서 여름 밖으로 빠져나온 맨살들

 

여름 아닌 곳에서 발견된 책은 지구 종말을 이야기 한다

나는 여름 아닌 곳에서

기계에서 버림 받고

돌고래는 꼬리지느러미로 서서 박격포를 쏠 준비를 하지

총구를 바라보는 중이다

더 이상 우리를 참아주지 않는 세계는 이미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름 아닌 곳에서 해변이 내밀어주는 햇볕을 믿어보는 것이다

 

여름엔 여름이 와서 반바지와 비키니를 입는다

여름이 너무 많아서

여름을 벗으려고

6월에서 7월 달력을 넘기는 일만큼, 좋은 곳은 없다

여름이 더 많이 생기니까

아직 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여름을 자두나무에서 만졌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입 찢어 잠을 꺼내는 고양이를 여름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여름이 와도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여름도 사람을 지겨워한다

매미가 여름을 입고 나와서 옷장이 다 헤질 때까지 운다

그러니까 여름은 몸집이 큰 짐승일수록 좋아한다

날것에게 뜯기고 사는 동안, 여름이 커다랗게 죽는다는 느낌

커다란 사람이 좁은 집안을 돌아다닌다

나는 조금 더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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