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되는 그늘처럼
-이진환
어스름을 벗는 새벽의 그늘엔 웃음을 말린 헛기침이 있어
고요가 몸을 풀고 잎사귀 맑아지는 소리다
비행을 준비하는 새들의 소란만큼이나 짧은 아침에
그늘의 귀퉁이가 닳아도
해 질 녘, 저들의 날갯짓이 힘들라 치면 뒷짐 지던 자신을 몹시 흔들지 않더냐
흘린 땀에 길들여져 묵직해진 발소리에
무심한 듯 눈짓 주다가도 가운데 자리 내어주고
시큼해진 속이라서 한 사발막걸리로 얼큰한 팔베개에 두 눈을 감아보는
그런 거다
가려운 등을 긁어가며 뒤트는 몸짓을 하다 보면 바람이 되는 거다
한 소절씩 노랫말을 반복하다 보면 이 시절이 그 시절이 되는 거다
길 건너간 이에게 안부는 한 번 더 보고 싶어서고
건너오는 이에게 안부는 한 번 더 불러보고 싶어서다
오가던 허전함에 익숙해진 손을 펴보면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걸음을 생각해보지만 저도 모르게 나무 그늘에 앉아서는
눈 속 깊숙이 말라붙은 허물에 마른침 삼키다가
등뼈 위로 얹히던 눈시울처럼
귀밑 들치는 찬기를 움켜쥐고 노을 잠에 들기도 하지 않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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