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에서 재로
-이윤설
꿈에 당신이 찾아온 어제는
둘이 서먹하니 마루에 앉아 있습니다
빈 쟁반의 보름달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당신이 내 옆에 가까이 있어 본 지도
하도 오래되었는데, 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나는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엔 미워 불러볼 이름 하나 없이 맑고
잡초 자란 마당가에
우리 둘이 소복하니 무덤처럼 앉아
말없이 백 년 동안 한 얘길 하고 또 하며
당신이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지러지는 달의 얼굴이
소금처럼 소슬하고 짠 빛으로 와서
우리의 식은 재를 만져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가벼이 고운 가루인 줄 몰랐을 때도 있었습니다
조용히 산이 마루로 다가와 당신을 보자기에 싸듯 덮어 달쪽으로 데려가도록
나는 꿈에도 오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용서가 그런 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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