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나는 해독할 수 없는 편지다 / 조은설

주선화 2024. 3. 11. 10:23

나는 해독할 수 없는 편지다

 

-조은설

 

 

나는 아무도 읽지 못한 한 통의 편지다

그러나

그대가 나를 읽지 못한다는 건 견딜 수 없는 통증

 

판독할 수 없는

고대의 상형문자와 기호들이 문신처럼 뒤덮인

내 영온과 육

그대는 읽어낼 줄 알았는데

 

나는 소행성의 어린 여자

새벽 미명에 은하계를 건너오다 그만

그대의 자장에 부딪혀 추락하고 말았지

 

하염없이 목마른 시간들을 갈아 마시며

몇억 광년이나

광활한 우주를 떠돌았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그대를 견디는 것뿐

더는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벼랑에서

기다림의 낡은 끈을 놓아버렸다

 

나는 그대가 해독할 수 없는 슬픈 편지

한 문장씩 지워내도

내 안의 그대는 고스란히 남아

 

나를 읽어주기를

안간힘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