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이름 / 서진배

주선화 2024. 5. 9. 15:22

이름

 

-서진배

 

 

엄마는 늘 내 몸보다 한 사이즈 큰 옷을 사 오시었다

 

내 몸이 자랄 것을 예상하시었다

 

벚꽃이 두 번 피어도 옷 속에서 헛돌던 내 몸을 바라보는 엄마는

얼마나 헐렁했을까

 

접힌 바지는 접힌 채 낡아 갔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름을 먼저 지으시었다

내가 자랄것을 예상하여

큰 이름을 지어시었다

 

바람의 심장을 찾아 바람 깊이 손을 넣는 사람의 이름

 

천 개의 보름달이 떠도

이름 속에 헛도는 내 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서

까마귀가 날아갔다

 

내 이름은 내가 죽을 때 지어 주시면 좋았을 걸요

 

이름대로 살기보다 산 대로 이름을 갖고 싶어요

 

내 이름값으로 맥주를 드시지 그랬어요

 

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걸요

 

아무리 손을 뻗어도 손이 소매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요

이름을 한 번 두 번 접어도 발에 밟혀 넘어지는 걸요

 

한번도 집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한 이불처럼 이름이 있다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날 저녁이면 나는

이불을 덮고 잠을 잔다

 

뒤척이며 이름은 나를 끌어안고 나는 이름을 끌어안는다

 

잠에 지친 오전

새의 지저귐이 몸의 틈이란 틈에 박혔을 때,

 

이름이 너무 무거워 일어날 수 없을 때,

나는 내 이름을 부른다

 

제발 나 좀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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