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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따르는 사람 / 김동균

주선화 2024. 10. 10. 15:30

우유를 따르는 사람

 

- 김동균

 

 

창가에 앉아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당신은 조용히 그것을 따르고 부드러운

빛이 쏟아졌다. 둘러맨 앞치마가 하얗고 당신의 얼굴이 희고 빛이 나는 곳

은 밝고 빛이 없는 곳에서도 우유를 따르고

 

우연한 기회에 인사를 건네고 거기에서 우유를 따르고 다음 날에도 성실하

게 우유를 따르는 그런 사람에게 매일 우유를 따르는게 지겹진 않나요, 그곳

은 고요하고 그곳에서 당신은 계속 지켜보기로 하고

 

어떤 날엔 TV를 켰는데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출연한다. 책에서도 우유를 따

르는 당신이 등장한다. 당신이 앉아 있는 지면에 부드러운 빛이 쏟아지고 서

가가 빛나고 읽던 것을 덮어도 빛나는 창가에서 우유를 따르던 당신이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여기서 우유를 마시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차

분하게 우유를 따르고 열 번을 쳐다보면 열 잔이 되는 우유가 있다. 실내는 눈

부시고 새하얗게 차오르는 잔이 가득해지고

 

그런데 누가 우유를 옮겨요, 지켜봐도 옮기는 사람이 없는데, 우유를 가져다

준 적이 없는데, 당신도 환하고 당신이 우유를 계속 따라서 그런 거잖아요. 문

밖에서 발목이 젖고 우유가 넘치고

 

우유가 흐르는 골목이 차갑고 당신은 계속 따를 수 있겠어요, 당신의 손이 새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ㅡ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