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리키 앵무
-이주경
조용히 우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주전자 물 끓는 소리보다 작게 울어도 가둔
다 미풍에 머리카락 날리는 소리보다 작게 울어도 가둔다 창문보다 낮게 목소
리 죽이는 아이, 이웃집엔 중문도 방음벽도 없단다 얌전히 울면 해바라기 씨를
가득 줄 테야
호기심 많은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탁자 위에 놓인 꽃병을 쪼아대도 가둔다 짧
고 단단한 부리로 백합 꽃잎을 쪼아대도 가둔다 동글동글한 눈빛으로 수도꼭지
를 툭툭 건드려도 가둔다 집안에서 제일 예민한 각도로 웅크리는 아이, 이웃집
엔 꽃병도 수도꼭지도 없단다 너의 호기심을 잠그면 해바라기 밭을 줄 테야
혼자 놀기 좋아하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오후 햇살이 올리브색 깃털 위로 미
끄러져도 가둔다 건반 위를 콩콩 뛰어다니기만 해도 가둔다 깨지지 않는 거울을
보고 혼잣말을 해도 가둔다 방안에서 깃털을 고르는 아이, 이웃집엔 햇살도 거
울도 없단다 방안 가득 네 꿈을 펼친다면 새창을 통째로 줄 테야
아파트 밖을 나서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창문 여는 소리만 들려도 가둔다 놀
이터에서 들리는 웃음 소리가 높아져도 가둔다 마오리족의 깃털처럼 가벼워지
려는 아이를 가둔다 창살 안에서 노란 깃털을 뽐내는 아이, 이웃집엔 너 같은 아
이도 악보도 없단다 내 앞에서만 노래하면 새장을 요람처럼 흔들어 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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