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2007 조선일보 신춘 동시

주선화 2008. 1. 4. 22:00

2007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햇빛 박물관 / 이진영


햇빛 좋은 날 강가에 나가

강물보기를 해 봐요

강물은 햇빛 박물관이어요

물결이 일 때마다

신석기 시대의 햇빛

고구려 시대의 햇빛

첨성대 위의 햇빛

다보탑 위의 햇빛

은거울 같은 햇빛

호리병 같은 햇빛

은밥그릇 닮은 햇빛

은나비귀고리 닮은 햇빛

햇빛 햇빛 햇빛

하늘에서 막 출토된 햇빛 토기들이

이랑 이랑 이랑져

가슴으로 밀려와요

그러면 내 가슴도 햇빛 토기로 가득 찬

햇빛 박물관이 되어요

햇빛 좋은 날 강가에 나가

강물보기를 하고 있다 보면

나는 그렇게 햇빛 박물관으로 살고 싶어요

햇빛 토기로 가득 찬 햇빛 박물관이 되어

친구들에게 눈부신 햇빛 토기를 나눠주는

토기의 집이 되고 싶어요

 

 

[심사평] 발상이 신선하고 상상력도 활달해

 

박두순 아동문학가


 

    • 박두순
    • 응모된 1011편 가운데서 1차로 15편의 작품을 골랐다. 이 중에서 다시 6명의 작품 ‘햇빛 박물관’(이진영), ‘낮에는 별님이 어디에 있나요?’(정안), ‘사과나무 길’(이현주), ‘빈집이 말을 한다’(오서하), ‘가족사진’(김수진), ‘아침 바다 통통배’(한산월) 등으로 좁혀 읽었다. 여기서 더 좁히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독하게 마음을 추슬러 최종으로 ‘햇빛 박물관’ 과 ‘낮에는 별님이 어디에 있나요’로 압축했다. ‘사과나무 길’ 은 마무리의 안이함으로, ‘빈집이 말을 한다’는 메시지의 적절성 문제로, ‘가족사진’은 묘사의 산문화로, ‘아침 바다 통통배’는 시 형식의 신선함 부족 때문에 아쉽게도 물러서야 했다. 이렇게 2편으로 좁혀지기까지 발상의 참신함, 시상 전개의 자연스러움, 구어체 남발, 이미지 구사 능력, 동심 해석의 오류, 소재의 새로움, 주제의 적절성, 기성 작가 여부, 표현의 독창성 등을 꼼꼼히 따졌다.

      당선작을 고르는 고통은 너무나도 컸다. 결정 전날 밤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결국 신선함이 더한 쪽에 손을 들어 주기로 했다. 신춘문예는 참신한 작가를 발굴하는 데 무게가 더 주어져 있을 뿐 아니라 신인은 신선함이 가장 큰 미덕인 까닭에서다. 그래서 ‘햇빛 박물관’이 당선의 자리에 올랐다.

       ‘낮에는...’은 전통 서정시의 맥을 건강하게 이은 동시로 짜임이나 형상화, 주제 구현, 압축과 절제, 비유의 적절함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작품이었으나, 도식적이면서 이미 읽어본 듯한 낯익은 느낌을 주는 게 흠이었다.

      거기에 비해 ‘햇빛 박물관’은 약간 산만한 감을 주나, 발상이 신선하고 상상력이 활달하다. 현대시적인 기법에다 역사성을 가미한 것이나, 좋은 상상력으로 강물에서 햇빛이 반짝이는 광경을 여러 모양의 토기로 환치, 햇빛 박물관과 토기의 집으로 그려낸 낯설고도 참신한 작품이다.

     

    [당선소감] 우울증 헤매다 어린 시절 동심 그리워져

     

    이진영

     

    • 이진영
    • 눈물이 났습니다. 지난 8월, 우울증으로 요양을 떠난 뒤 회사는 파산하고, 많은 분들께 상처를 주었습니다. 봇짐에 병든 몸을 싣고 이 산 저 강 흐르는 동안, 잃어버린 동심이 한없이 그리워졌습니다. 맑고 순수했던 제 어린 날은 어디로 간 것인지, 그 마음을 꼭 되찾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강가에 나가 햇빛을 보다가 이 동시를 썼습니다.

      저에게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멋진 재기의 장을 만들어준 조선일보사에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 아내 딸 아들, 그리고 큰 아픔을 드린 분들께는 용서를 빕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대학입시를 치른 딸 금지의 입학금을 조금이라도 보탤 수 있어 기쁩니다. 더욱 맑고 순수한 동심으로 열심히 살며 열심히 쓰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1958년 전남 영광 출생

      ▲원광대 국문과, 중앙대 대학원 문창과 수료

      ▲1986년 서울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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