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2007년>
*' 입아아입 (入我我入)' 이라고 했다. 저것이 나한테 들어 있다고 했다
이 세계는 서로가 연결되어 주고받는 중중무진 (重重無盡) 연기의 세계이다
'법화경'을 보면 입아아입을 몸소 실천한 상불경보살 (常不輕普薩)이라는 이가 있다
그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 나는 당신을 공경합니다. 나는 당신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고
말하면서 살았다 막대기나 돌맹이로 때릴 때도 피해 도망가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후일에 많은 사람은 상불경보살의 큰 사랑을 알고 그를 예배 공경했다지만,
김선우시인은 90년대 여성시의 흐름을 이어오면서 '육체성'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그녀의 시는 딱한 생명을 뱃속에 품고 강보에 받아내고 젖을 먹여 길러내는 모성을 보여준다.
' 아프지 마, 목숨이 이미 아픈 거니까/ 아파도 환한 벼랑이 목숨이니까" 라고 말할 때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시는 사바세계의 가엾은 목숨을 살려내는 천수관음의 마음을 지녀 몸을 섞고 탐하는 쾌락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
개화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이 시는 그 뜻이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러나 꽃피는 꽃의 몸과 내 몸을 교차시키면서 이 시는 의미의 확장을 얻는다
꽃과 꽃벌의 혼례가 꽃과 나와의 혼례로 얽혀 읽히면서 이 시는 심상치 않은 의미를 낳는다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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