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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이성부

주선화 2008. 3. 7. 16:07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람마저 잃었던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 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1974년>

 

 

봄! 살찐 볼을 만지는 것 같다

입안에서 쑥 냄새가 돈다. 노란 산수유 그늘도 펼춰진다. 연못가 버들개지도 눈을 뜬다

볕은 보송보송하다. 옷은 가볍고 걸음은 경쾌하다

 

봄! 자연에게만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도 그것은 돌아온다. 인심에도 계절이 있다

 

이성부 (66세)시인은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를 지닌 민중시인이다

" 벼는 서로 어우러져 /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울수록 /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

라고 쓴 시 '벼' 는 민중 서정시의 한 경지를 보여 주었다

그가 돌아오고 있다. 오늘은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봄을 마중 나가자.

들길과 거리와 사람 사는 동네에, 그리하여 이 세상에 봄볕 그득할 때까지, (문태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