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종이 웅덩이 /김륭

주선화 2008. 6. 14. 21:30

종이웅덩이/김륭

 

 

 

비 샌다 장맛비 사흘만에

까무칙칙해진 천장 위 종이웅덩이가 생겼다

 

반 지하 셋방에 잠겼던 얼굴이

배불뚝이 주인집 지붕 위로 떠올라

한 길 사람 속이다

 

젖은 바람벽 사이 자궁을 갖지 못한 말들이 물처럼 술렁거리는

밤, 추억이란 물귀신들마저 보따리를 쌌는지

비었다 텅

텅텅

 

링거처럼 매달렸다 터지는

눈물 삼십 촉이 번쩍, 세상 몰래 찍어 보여주는

엑스레이 한 장

 

흙 묻은 엉덩이처럼 툴툴 털고 다니던 가슴이

빗물 들이친 천장에 올려져있다

 

이미 오래 전에 천둥벼락을 맞았다는 듯

들것에 실려있다

 

울지 말고 가야 한다

누구나 종이웅덩이 하나씩은

품고 산다

 

 

<다시올문학 2008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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