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어두워서 좋은, 지금

주선화 2009. 2. 17. 15:41

어두워서 좋은, 지금 / 박소유

 

 

처음 엄마라고 불려졌을 때

뒤꿈칠르 물린 것같이 섬뜩했다

말갛고 말랑한 것이 평생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하니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다

너무 뜨거워서

이리 들었다 저리 놓았다 어쩔 줄 모르다가

나도 모르게 들춰 업었을 거다

 

아이는 잘도 자라고 세월은 속절없다

낮가림도 없이 한 몸이라고 생각한 건 분명

내 잘못이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복음이었나

앞만 보고 가면

뒤는 저절로 따라오는 지난날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깜깜 무소식이다

 

그믐이다

어둠은 처음부터 나의 것

바깥으로 휘두르던 손을 더듬더듬, 안으로

거두어들었을 때 내가 없어졌다

어둠의 배역이

온전히 달 하나를 키워내는 것, 그것뿐이라면

그래도 좋은가, 지금

 

 

*현대시학 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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