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시작

탁발

주선화 2010. 6. 22. 17:14

24시의 탁발승/ 주선화

 

 

오늘은 어디쯤에서 내 몸을 누이고 탁발을 할까?

 

팔 한쪽이 굽고 다리도 굽은

남은 팔로 땅을 지탱하며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처올린다

부처처럼 한 손을 오므리고

경배하듯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세상을 통달한 사람처럼 엎드려

고개 박는다

 

끙끙거리며 다리를 끌고

나무토막처럼 뻣벗한 팔을 내려놓으며

거지의 24시간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된

기자를 떠 올리며

바구니가 더 찰 수 있게

딸랑딸랑 소리를 올린다

 

울림이 클수록

지폐는 쌓인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거라고,

24시의 탁발승이 되어

지나는 걸음걸음에 축복을 던지며

축원을 아침 예불처럼

바람소리 물소리 풍경소리

배경으로 삼아

 

24시 편의점은

세상에서 없을 것도 있을 것도

두루 있는 듯 하다

삼각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헤스럿원두커피를 들고

의자에 앉아 미니스커트 입은

늘씬한 종아리에

경배하듯 컵을 들어올린다

여자여! 젊음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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