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불멸의 명작 / 천양희

주선화 2011. 4. 15. 16:30

불멸의 명작 / 천양희

 

 

누가

바다에 대해 말하라면

나는 바닥부터 말하겠네

바닥 치고 올라간 물길 수직으로 치솟을 때

모래밭에 모로 누워

하늘에 밑줄 친 수평선을 보았네

수평선을 보다

재미도 의미도 없이 산 사람 하나

소리쳐 부르겠네

부르다 지치면 나는

물결처럼 기우뚱하겠네

 

누가 또

바다에 대해 다시 말하라면

나는 대책없이

파도는 내 전율이라고 쓰고 말겠네

누구도 받아쓸 수 없는 대하소설 같은 것

정말로 나는

저 활짝 펼친 눈부신 책에

견줄 만한 걸작을 본 적 없노라고 쓰고야 말겠네

왔다갔다 하는 게 인생이라고

물살은 거품 물고 철썩이겠지만

철썩같이 믿을 수 있는 건 바다뿐이라고

해안선은 슬며시 일러주겠지만

마침내 나는

밀려오는 감동에 빠지고 말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