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천수관음(千手觀音) / 윤진화

주선화 2011. 4. 16. 11:55

천수관음(千手觀音) / 윤진화

 

 

1

시장 좌판에서 배 보이며 누운 암게들을 본다

배딱지가 황금알로 누렇다

황금색 옷을 입은 천수관음 무희들처럼

팔을 벌리고 세로로 촘촘히 진열돼있다.

 

2

눈먼 여자가 그물을 손질할 때, 아얏!

똑바로 하라고 손끝을 물던 집게 달린 손

내 정신줄에 엉켜 이마에 숨겨둔

빛나는 눈을 꺼낸다.

 

3

술을 마시고야 고작

눈을 부르떴던 분노의 새벽길

나를 보고 달려오던 어머니의

벌린 팔이 삼십육 개였다가

구십구 개였다가, 백팔 개였다가,

이윽고 천수(千手)가 되어 부둥켜안았다.

희디흰 눈알이 눈밭이 되어 부딪쳤다.

 

4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까마득한 그 어머니가,

일제히 팔을 벌리고 나를 붙들었다.

경계 없고 한갖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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