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12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주선화 2012. 1. 6. 13:03

링거 속의 바다 / 김영란

 

 

 

온 몸이 글썽거린다 아득한 바다냄새

어쩌면 이 신열은 오래 전의 길 하나 열어줄지도 몰라

세상은 바다가 낳은 미지근한 비망록일거라고

아니, 그 비망록이 낙서들의 끝에 부려놓은 삽화일거라고

네가 나른한 힘을 얘기했던 곳으로

지금 나는 가고 있는지도 몰라

내가 너의 힘을 빌려 나에게 이르지 못할 때마다

변명처럼 꺼내든 바다가 아닌

방금 전 내 몸의 한 모퉁이로 들어오던

링거액 같은 바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잠깐의 외출로

조회할 수 있는 너를 믿지 않지

너의 웃음이 우리가 기억할 수 없는 날들 속에서

조난의 느낌 하나만으로

바람을 이끌고 오고 폭풍을 이끌고 와

끝내 범선 같은 고백을 숨겼던 것처럼

나 지금도 먼 옛날의 너를 믿지 않아

기억이란 몇 방울의 망각으로 걸어나갔던

오랜 신열의 발자국들

어디선가 때 이른 저뭄이 다가와

내 옆구리를 툭 친 것도

네가 나로부터 멀어지던 형식이었음을 기억하는 한 순간

내 통증의 한 쪽에서 고개를 드는 현실 하나

나는 잠시 링거액 건너편에 기대어 놓았던 목발을 챙겨

너의 바다가 보일 것 같은 창가로 절룩절룩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