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노숙 / 김사인

주선화 2015. 12. 23. 11:09

노숙 / 김사인

 

몸은 있으나 몸을 부려둘 공간이 없다 그들에게는

소비할 공간이 없다 먹고 죽을 공간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발을 두나 머리를 두나 먹을 입과 담아둘 위장과 배설할

항문을 어떻게 두나 똥은

또 어디에 내려놓나

모든 가능 공간을 몰수당했으므로 그들은

존재일 수 없음

그러므로 그들의 시간도 꽃필 수 없음 나프탈린처럼

또는 유령처럼 생으로 졸아들다가 증발한다

그러니 그들의 시간도 튀긴 구정물처럼 길가 담벼락이나

애꿋은 바지자락 같은 곳에 묻어 오갈들 뿐

그 떳떳하던 공간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들은 정말로

그 싱싱한 공간들을 어디에나 똥 뉘 치운 것인가

마이너스 공간에서 반 (反) 물질을 소비하며 그들은 있다

아닌 공간의 그들을 인 공간에서 보면

없다, 떼먹은 공간을 변제하고 그들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현재는 오직 게워냄에 있다 제 안을 밖으로

뒤집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게운다 제 목구멍을 제 내장을 제 항문을 항문

바깥의 우수마발(牛搜馬勃) 장삼이사 돗긴갯긴을 피눈물을 마지막으로

게우는 제 입까지를 게운다

구강에서 항문까지 속통의 안팎이 홀딱 뒤집힌 채

그들은 있다, 있음인 체해본다 한사코

그들은 완성이자 죽음인 블랙홀이다 모든 공간은 몰수되고

 

우리는 그들의 내장 위에 붙어 있다

우리는 그들이 게워낸 공간 위에 다시 게워져 있다

우리는 그들의 항문을 지나 그 다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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