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받아둔 물
천지경 시인
- 입력 2020.12.07 14:01
받아둔 물
주선화
밥물은
전날 받아둔 물로 한다
미리 받아둔
순한 물이다
화를 가라앉힌 물이다
찻물이나
화분에 물을 주어도
순한 물을 쓴다
순해지는 나이를 지나고 보니
두둑한 땅 아래로만 흐르는
이랑 물인 거 같고
나는 여전히 악, 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넌지시 바보 소리나 듣는
그저 그렇게 받아둔 물인 거 같고
천지경 시인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면서부터 나는 순해지지 않고 악바리로 변했다. 힘든 삶이 자꾸 나를 악하게 만든 것 같다. 돈돈돈, 돈의 노예로 살았고, 재산 한 푼 물려주지 못한 부모님의 무능함을 원망하며 살아왔다. 이제 아이들을 제 둥지에 앉혔으니 화를 가라앉힌 순한 물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광활한 우주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일생이 눈 한번 깜빡이는 찰나라 하더니 어느새 그저 그렇게 순한 물처럼 살아가야 할 나이가 되어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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