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어디에서 / 김한규

주선화 2021. 8. 18. 16:16

어디에서

 

ㅡ 김한규

 

 

  생각하지 않았는데 바다가 있었다 바닥을 밀며 마분지

가 검게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입니까

 

  경치라고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발이 길을 끌었다 나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기로 했다 나가라, 는 말을 듣기 전인

지 후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여행지입니까, 물어보고 싶었으나 아무도 없었다 행여

돌아갈 의도가 있었는지 돌이켜 보았으나 도리가 없었다

 

  나는 번지고 있었지만 끌 수 없었다 번지가 없는 방에는

종이가 눅눅하게 누워 있었다 그런 날이 또 있을까

 

  물을 물을 수 없는 깊이로 소용돌이를 감추었다 소용

없다는 말도 들리지 않았고 둘러봐도 여전히 검은색은

두꺼웠다

 

  주위가 옆으로 천천히 번졌다 돌아가지 않는 생각으로

나무가 있었다 묽게 지나가고 싶었다